행복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부터, 집에 머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캠핑의자랑 간단한 간식을 챙겨 들고,
동네 공원으로 나가 책도 읽고 사진도 찍으며 한나절을 보내곤 했는데…
이제는 책상 위에서 책을 보거나,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편하다며,
밖에 나가자고 하면 슬쩍 고개를 젖힌다.

그런 행복이의 마음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나도 어릴 적엔 비슷한 때가 있었으니까.
하지만 문득문득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진다.
햇볕 아래에서 함께 웃고, 바람을 느끼며 걷던 시간이 점점 흐릿해지는 게 아쉬웠다.
어릴 땐 그렇게 잘 나가던 아이가, 어느새 나보다도 더 집순이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만의 취미를 하나 만들어보면 어떨까.
크고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작지만 따뜻하고, 무엇보다 함께하는 시간이 될 수 있는 무언가를.
햇살이 좋은 어느 토요일 오후,
우리는 집에서 멀지 않은 볼링장으로 산책을 나섰다.
가벼운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고, 아이들과 함께 골목길을 천천히 걸었다.
그 길 위엔 별다른 말이 없어도 묘한 따뜻함이 감돌았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나란히 걷는 이 짧은 거리마저도, 작은 여행처럼 느껴졌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볼링장은 예전보다 조금 낡아 있었지만, 여전히 정겹고 반가운 공간이었다.
그 익숙한 공 냄새, 핀이 쓰러질 때 나는 청량한 소리,
아이들이 기대에 찬 얼굴로 공을 고르는 모습이 하나둘 마음을 간질였다.
아빠, 나, 튼실이, 그리고 행복이.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두 팀으로 나눠 게임을 시작했다. 아빠와 행복이, 그리고 나와 튼실이.
8살 차이가 나는 오빠와 동생은 이 날따라 더 다정했다.
작은 손으로 오빠 손을 꼭 잡고, 무슨 비밀이라도 말하듯 웃으며 속삭이는 튼실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 장면은 마치 포근한 담요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감쌌다.
처음엔 다들 어색했다.
핀 앞에서 똑 멈춰버린 공, 옆 레인으로 굴러가버린 공, 공보다 더 흔들리는 자세.
실수가 이어졌지만, 웃음은 점점 더 커졌다.
하이파이브가 오갔고, 서로의 엉뚱한 자세를 따라 하며 장난도 치고 깔깔 웃었다.
이기는 것도, 점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순간만큼은 웃고 있는 얼굴들이 전부였다.
중간에 들른 볼링장 옆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나눠 마셨다.
각자의 컵에 담긴 스무디 색깔처럼, 우리 가족의 분위기도 밝고 생기 있었다.
그저 음료 하나 나눠 마시는 일이었지만, 왠지 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았다.
게임이 끝나고, 공을 반납하고 나오는 길.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이 나왔다.
“우리, 매주 주말에 볼링 치자!”
서로 손을 툭툭 털며 웃었다.
그 약속이 대단한 말은 아니었지만, 그날의 기분처럼 마음을 단단하게 묶어주는 말이었다.
별것 없는 하루가 특별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우리가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점수는 곧 잊힐 것이다.
하지만 그때 우리가 주고받은 눈빛, 작은 응원, 서로의 실수에 터진 웃음소리만큼은
오랫동안 우리 마음속 어딘가를 따뜻하게 덮어줄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웃고 함께 숨 쉬는 그 순간들이야말로
가장 우리다운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그날, 하나의 약속을 더했다.
“다음 주엔, 배드민턴 치러 가자!”
살랑이는 바람을 맞으며, 라켓 소리보다 더 크게 웃음소리가 번지길 바란다.
그렇게 우리는 또 하나의 추억을 향해, 우리만의 속도로 천천히 걸어간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